나는 엄마에게 엄마라고 부른다.그리고 아빠에게는 아빠라고 부른다. 이게 무슨 당연한 말인가 싶지만 시간이 갈수록 엄마에게 엄마라고 부르고 아빠에겐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지 종종 고민이 될 때가 있다.엄마와 어머니. 아빠와 아버지.그 사이에서의 고민인 것이다. 엄마나 아빠라는 호칭 자체는 어머니나 아버지보다 왠지 모르게 더 친근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그 이름 자체에서 어떤 위안이 느껴진달까. 엄마!아빠! 하고 불러보면 내가 아직 아이로 머물러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인 것도 같다. 누구나 그렇듯, 우리는 모두 아이였다. 시간이 흘러 법적으로는 성인이 되었으나 진짜로 어른이 되었는지는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닥쳐오는 모든 상황들이 버겁고 어른스럽게 대처할 여유가 없는데 갑자기 어른이란다. 그렇다고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해서 갑자기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엄마와 아빠는 가끔 우스갯소리로 “네가 나이가 몇 살인데 엄마, 아빠라고 부르냐!” 고 말한다. 그러면서 엄마, 아빠는 내가 컴퓨터를 오래 보고 있거나, 편식을 하거나, 씻지를 않는다던가 하는 추잡한 행동을 할 때면 어김없이 잔소리를 한다. 이것이야 말로 누구보다 더한 애 취급 아닌가.이럴 땐 내가 도리어 묻는다. “내가 나이가 몇 살인데!” 서로 불리할 땐 어른이고 아이면서, 어쩔 땐 유리하게 어른이고 아이다.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어떨까. 우리 엄마, 아빠는 아마 적잖이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이제야 어른 같구먼.” 하면서 왠지 모르게 뒤에선 씁쓸해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흔히들 말하는 독립이 경제적 독립이나 결혼을 넘어서서 엄마가 어머니가 되고 아빠가 아버지가 될 때, 이것이 완전한 독립인가 싶기도 하다. 예전에 어린 아이를 육아하는 프로그램에서 이런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부모는 아이를 향해“너무 빨리 크지마.”라고 말한다.부모님의 의견을 여쭤본 적은 없지만, 내가 아이에서 어정쩡한 어른이 되어가는 것만큼 엄마, 아빠도 아쉬워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아쉬워하며 성장하는 동안 엄마, 아빠는 나보다 더 큰 어른이 되어갔다. 엄마, 아빠의 세월을 먹고 딱 그만큼 내가 자란 셈이다.따지고 보면 우리 엄마, 아빠가 나를 낳았던 그 때가 지금의 내 나이 정도인데 그때부터 엄마나 아빠로 불렸을 그 이름의 무게가 어땠을까. 나는 예전에도 지금도 어린 아이처럼 쉽게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데...고작 진정한 어른이 되기 싫어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르는 걸 꺼리면서 말이다. 나에겐 쉽고 엄마, 아빠에겐 어려운 이름의 무게였을 것이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마치 나이의 숫자를 세는 것처럼,"만 30세부터는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르세요!"하고 정해져있다면 어떨까 하는 이상한 생각이었다. 그러면 괜히 그때는 그 호칭을 감당할 만큼의 철이 들지 않을까하면서 말이다.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딱 그 이름을 진심으로 불러드릴 수 있을 정도의 어른.그 만큼은 빨리 자라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