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대학원 첫 학기가 다 지나갔다. 여러 국적의 친구들과 함께 그룹 프로젝트를 하고, 혼자 리서치를 하고 생각을 발전시켜서 아카데믹 페이퍼를 쓰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성취와 절망들이 뒤엉킨 시간들을 보냈다. 지금은 마지막 과제들을 하고 있는 중인데, 두가지 과제의 데드라인이 겹쳐있어서 머릿속을 200% 활용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거기다가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시작했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따듯하고 인간적이어서 일하러 가는 것이 내 삶의 낙이자 놀이가 되었다. 리테일 세일즈 어시스턴트로 일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게 너무 재밌어서 일에 몰입하다보면 공부에 몰입할 에너지가 상대적으로 줄어들기도 하였다. 집에 와서 샤워하고 나면 책상에 조금 앉아있는 척 하다가 잠들기 일쑤, 어째서인지 즐겁지만 조금 에너지가 달리기도 하는 나날들. 나도 모르는 와중에 공부와 일을 병행하는게 조금 무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그렇지. 책상머리에 앉아서 하는 공부는 그래도 에이전시에서 일하면서 얻은 근력(?) 같은게 있어서 하겠는데, 문제는 나가서 하는 공부 즉 커뮤니케이션에 있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가장 어려운게 커뮤니케이션, 즉 영어이고 또 문화였다. 더 큰 세상에서 더 많은 이들과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갖고있는 이 장애물을 넘어서야만 한다는 생각에 커뮤니케이션 스킬 늘리는 것에 늘 진심인 편인데도 참 쉽지가 않다. 확실히 세미나 혹은 토론에서 의견을 이야기하고, 서로 합의점을 찾는 과정들이 모국어를 쓸 때와는완전히 다른 것 같다. 영어도 영어지만 내가 이 필드에 대해 아는게 없어서, 혹은 순발력이 부족해서 참여하지 못하는 것 같다. 토픽 자체는 알겠는데 친구들이 무슨 얘기 하는지 모를 때도 있다. 마지막 수업에서는 거의 수업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치만 이 모든것들이 아주 조금씩 느리게 나아지는게 눈에 보인다. 영어만을 탓하기보다 그냥 공부를 더 하면서 쌓아야하는 짬바(짬에서 오는 바이브)같은 것들도 분명 있어보인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뼈를 깎는 고통을 느끼며 앞으로 나아가지는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나태해보일 수도 있지만, 지치지 않고 조금씩 나아가서 롱런하는 방식을 택했다. 무엇이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시점은, 한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인 것 같다. 너무 갑자기 앞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모든 의욕이 꺾이면서 ‘난 못할 것 같아’ 라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우주를 구하고 지구를 구한다 한들, 나를 구하지 못하면 안 되는 것 아닐까. 나의 욕구를 먼저 채워주고 그리고 내 주변을 꽤 충분히 돌봐준 이후에 그 다음의 일들도 내다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자연스럽지 않을까. 내가 속한 하루를 그리고 눈앞에 닥친 일들을 그저 묵묵히 해나갈 때 비로소 안정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일을 잘 끝내야 내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거창한 부담감은 다 내려놓고, 그저 나는 나의 길을 갈테니 너도 너의 길을 가라, 정도의 마음으로 묵묵히 닥친 일들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에는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어있겠지. 나의 부족함과 불완전함을 동력 삼아 성장하고 싶지는 않지만서도 그저 Status Quo, 즉 현상태에 머물러있지 않겠다는 다짐은 오늘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드는 내게 조금은 위안이 될 것 같다. 관계도 일도 공부도 지금 당장 모든게 맘에 들진 않지만, 이걸 개선하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마저 없으면 우리는 무엇을 붙잡고 살아가야할까. 뭔가 부족한걸 감추고 누군가를 롤모델삼아 따라잡으려는 낮은 에너지에 머무르지 말고, 공존하고 화합하며 즐기고 소통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으니까, 개선 하고 있는 거 맞지 않을까. 이놈의 제2외국어는 언제쯤 익숙해질지 모르겠지만, 삼개국어 또는 사개국어 하는 친구들도 있는 마당에 겨우 영어 하나 더 배우는 걸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현 상태를 받아들이고 또 이 핸디캡을 갖고도 기죽지 않는 법을 터득해야겠다. 다음달엔 조금 더 말랑말랑한 토픽으로 돌아오길 기대하며, 프리워커 그레이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