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도통 꿈을 꾸지를 않는다. 얼마 전,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던 중에 깨달은 사실이다. 그것도 무려 10장짜리의 자유양식, 자기소개서. 이상하게도 자신을 소개하는 것보다 타인을 소개하는 게 더 쉬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서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실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나.’ 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내 눈엔 내가 보이지 않아서 그런가, 이상하게도 나를 드러내는 것은 어렵다. 심지어 나도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는 지경이었다. 그래서 자기소개서에는 평소에 내가 타인에게 즐겨 했던 말들을 적었다. 꿈, 낙서, 상상과 같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사소한 이야기들이다. 물론 이는 [1. 성장 배경에 대해 서술하시오.] 와 같은 기업의 자기소개서가 아니라 가능한 이야기였다. 어쨌든 그런 부담스러운 자기소개를 작성하고 있자니, 어릴 적에 꿨던 꿈은 이토록 생생한데, 최근에는 어떤 꿈을 꾸고, 어떻게 잠자리에 들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밤에 눈을 감으면, 그대로 아침을 맞이했다. 나는 그것이 내심 아쉽고 억울하게 느껴졌다. 잠을 자는 시간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무엇보다 꿈은 꾸려고 노력할수록 도통 꿔지질 않는다.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런 사소한 이유 하나가 기분을 울적하게 만들었다. 괜히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떨어지는 만큼, 나는 꿈을 꿀 시간을 잃어버리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 따위를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꿈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면, (이건 좀 다른 꿈이지만) 내 최초의 꿈은 문방구였다고 한다. 여기서 이상하고도 재미있는 점은, 문방구의 주인이 아닌 진짜로 ‘문방구’였다는 것이다. 어릴 땐 생물이나 무생물을 떠나서 그냥 내가 좋다고 생각한 게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능성의 여부를 따지지 않고 말 그대로 좋으면 그냥 좋은 것, 싫으면 정말로 싫은 것. 지금은 이상하게도 좋으면서 싫고, 좋으면서 어렵고, 좋으면서 힘들며, 가능성을 따지는 사람이 되었다. 어떤 경험에 빗대면서, 전혀 다른 일인데도 불구하고 ‘저번에 그게 안 됐으니까, 이번에도 안 될 거야.’와 같은 생각들을 하기도 하면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긍정을 노력하는 부정적인 사람이다. ‘안 될 거야’ 같은 생각을 가지면서 일단은 최선을 다해보는 이상한 사람이기도 하다. 어릴 적에 ‘문방구’를 꿈꿨던 생각을 해보면, 그게 진짜로 내 삶에서 제일 중요한 생각이 아니었을까 싶다.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문방구를 꿈꾸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나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냥, 내 꿈을 싫어하지도 않고 포기하지도 않고, 그 자체로 좋아할 수 있게 말이다. 최근에는 꿈을 꾸지 못했어도, 언젠가 꾼 재미있는 꿈들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자면서 꾸는 꿈도, 어릴 적 꿈도 말이다. 꿈을 자주 꾸지 않기에, 그 꿈은 계속해서 특별한 꿈이 된다. 그리고 그 꿈을 기억하고, 이따금씩 상기시키는 것도 어쩌면 그 자체로 좋은 거 아닐까. 그냥 그때의 꿈이 삶에서 이정표처럼, 그곳을 지나왔고, 그것 때문에 내가 이쯤 왔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 꿈들은 내 나이와 성장에 맞춰서, ‘그 때라서’ 꿀만한 꿈이었던 것 같다. 흔히 성장기에 꾸는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은 떨어지는 동안, 무진장 무섭지만, 어른들은 키 크는 꿈이라고 좋아하지 않았나. 떨어지는 동안의 공포가 영원할 것 같지만 늘 꿈에서 깨어나고 그것이 찰나가 되듯이, 길게 보면 꿈은 기나긴 삶의 일부다. 당장 오늘 밤의 꿈이 없다고, 내일 밤의 꿈도 없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